대한민국 고등교육 정책이 전환점을 맞았다. 교육부가 쥐고 있던 재정과 권한이 지역으로 이관되면서, 대학을 둘러싼 생태계는 각 지역이 스스로 설계하고 운영해야 하는 구조로 재편됐다.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 '라이즈(RISE)'는 학령인구 급감과 지방대학 위기, 수도권 집중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이다. 제주RISE 사업 출범은 단순히 대학 지원 차원을 넘어 지역의 생존 전략이자 미래 성장 전략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크다. [제주의소리]는 제주RISE센터의 설립과 의미, 각 대학별 전략과 과제 등을 5편에 걸쳐 다룬다. / 편집자 주
지역과 대학의 동반성장을 모색하는 RISE 사업은 크게 3개 축으로 작동한다. 지역 내 대학인 국립제주대학교, 제주한라대학교, 제주관광대학교가 저마다의 특성에 맞는 사업을 주도하는 구조다.
지역 거점 대학교로서 제주형 RISE의 심장부로 일컬어지는 제주대학교 RISE사업단은 대학이 지역의 혁신을 이끄는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 모델을 제시했다. 지역과 대학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함께 진화하는 현상을 뜻한다.
제주대 사업단은 2025년을 기점으로 5년간 총 1334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전반적인 지역 산업구조 체질 개선에 나섰다. 섬이라는 특수성에 의해 제주가 감수해야 했던 지역적 한계를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뛰어넘으려는 시도다.
'세계적 수준의 교육·연구도시 조성'을 핵심 목표로 내세우고, △제주 전략산업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 혁신 △전략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연구 혁신 △전략산업 중심 생태계 조성 및 지역사회 문제해결 △Open Edu를 위한 트윈 캠퍼스 조성이 주된 전략이다.
특히 지역사회 책무성을 실천해야 하는 대학의 입장에서는 전략적 파트너인 제주특별자치도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제주도가 RISE 계획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전략적 의도는 무엇이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제주대가 도내 싱크탱크 기관으로 지역사회 가치 창출에 집중할 수 있는 단위 과제와 세부사업 계획을 도출하는데 집중해야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제주대 사업단은 제주의 총인구수가 감소세로 전환했고, 고령화에 따른 청년인구, 생산인구 감소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신산업 발굴'에 주안점을 뒀다. 근간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동시에 미래 신산업으로 그린에너지, 항공우주, 모빌리티 등에 초점을 맞췄다.
또 편중된 산업구조를 개선하고, 균형적인 산업 성장을 필요로 했다. 실제 2023년도 기준 제주도의 GRDP는 전국의 1.1% 수준인 26조원 규모이며, 1인당 GRDP는 전국 평균의 82.7% 수준에 그쳤다.
지역 내 혁신을 선도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이 부재하며, 농어업, 관광서비스 중심의 1차·3차 산업 편중에 따른 현상이었다. 10인 미만 영세기업의 비중이 95.4%로 지역산업을 견인할 수 있는 중견기업이 부족한 것 역시 현실이었다.
이는 곧 우수기업 유치와 중점 산업 클러스터 조성을 통해 양질의 사업체를 확보해야 한다는 인식을 같이 한 배경이 됐다.
이에 제주대 사업단은 8개의 단위과제를 중심으로 25개 세부 프로그램, 66개 실행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지속가능한 핵심인재 육성' 과제를 위해 학사 구조를 개편하고, 온·오프라인을 망라하는 이른바 '트윈 캠퍼스(Twin-Campus)'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학사구조는 지역과 대학, 기업이 연합하는 교육과정자문위원회를 구성해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성과 평가까지 맡기게 된다. 가령 올해부터 자유전공으로 신설된 우주학과 교육과정과 맞물려 융합전공, MD, 트랙과 같은 학생설계전공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이와 맞물려 슈퍼컴퓨팅센터, 반도체 클린룸, 비임상센터, 항공우주클린룸과 같은 특화교육 환경 인프라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미 관련 학과에서 앞서가고 있는 성균관대(AI·디지털), 상명대(디지털헬스케어), 한예종(AI 문화예술콘텐츠) 등과의 협력 네트워크도 구축됐다.
이 밖에도 스마트 관광, 스마트 농축수산, 치유산업 등 지역의 근간이 되는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공급하게 된다.
2029년까지 학부생의 지역 내 취업률은 55%, 석박사 과정 진학률 7.3%를 목표치로 삼았다. 5년간 운영되는 기업연계 교육과정은 909건이 될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또 지역 현황 분석을 바탕으로 유학생 유치부터 진로 설계에 이르는 전략을 구축하는 것 역시 주요 과제다.
글로벌 자율전공의 유학생 전용 교육을 지원해 한국어 교육에서부터 전공 이수, 취업·창업에 이르는 교육 과정을 지원해 사회진출 역량을 강화시킨다. 글로벌 자율전공 학생들의 진로 희망 학과와 학내 학과 수요 간의 미스매치를 해소해 이들을 정주 인력으로까지 양성하는 것이 주된 목표다.
'누구나 살고 싶은 도시'로 정평이 나 있는 제주의 강점을 적극 반영한 런케이션 활성화 모델 구축도 병행된다. 이미 런케이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글로벌 런케이션 학습관' 구축과 대학내 실험실습 인프라, 공용장비, 공용시설 등을 개장해 활성화 작업이 진행중이다.
제주도 외에도 각 기관, 공사, 출연연, 기업, 마을이 함께하는 거버넌스가 저마다의 영역에서 가동중에 있다.
제주대의 RISE 모델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시 고질적인 지역 산업 구조의 대전환을 기대할 수 있다. 성과가 즉각적으로 가시화되기 어렵다는 과제를 안고 있지만, '지역이 키운 대학이 다시 지역을 키우는' 실증 모델이 실현될 지가 주목된다.
출처 : 제주의소리(https://www.jejusori.net)